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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첫날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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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의 노래를 보면 ‘첫날의 약속’이라는 곡이 있다.


‘첫 개업식날 친절봉사 외쳐 대면서 맛도 좋더니 실컷 놀다가 개학식날 굳은 맹세 하더니 변하더군 흐지부지 사랑이 식듯이 별 가책도 없이 원래 뭐 그런거 아니냐더군...




처음으로 창업이란 걸 하게 되었던 계기를 돌아보면 ‘마음껏 일하고 싶었던 이유’가 컸던 것 같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일찍 출근해서 일을 벌이는 것을 내 상사 외에는 팀원들 도 후배도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노력을 낼름 가로채 가는 상사의 모습이 얄밉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월급쟁이로써의 나의 삶의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게 다가 왔다.

일 년에 모을 수 있는 저축액, 보험료, 교통비...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슴이 답답했던 것은 은퇴하신 임원들의 삶이었다.


하늘 같은 임원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계약직 신분으로 변했고

은퇴하시면 공인중개사나 치킨집 사장님, 펜션 사장님으로 변신해 기존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업. 소위 ‘장사’ 라는 걸 시작하셨다.

그리고 평생 모은 걸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60이 되어 새로운 사업 아니 장사에 도전하는 일은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았다.

대부분 망했다.

‘갑’의 입장에서 ‘을’의 입장이 되어 머리를 숙이고 타인의 질타를 순순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 그들에게 결코 쉬운 삶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다.



성실하셨던 그분은 관리자가 된 후에는 과감히 사업에 도전하셨고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나 싶었지만 그 과감했던 도전 만큼이나 빠르게 집안을 몰락(?) 시키셨다.

채권자들의 발자국 소리, 전화벨이 울리면 공포감에 바닥에 바짝 엎드려 두려움에 떨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제대를 하고 처음 시작한 사회 생활도 아버지의 빚을 갚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제대 후 다시 대학에 들어가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등록금을 제 날짜에 내 본 기억이 없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안정적인 직장에 관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지만 생존경쟁의 격전이 이어지는 직장생활은 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뭔지 모를 허전함을 불러일으켰다.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업 자금을 1억원이나 주는 프로그램에 입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표이사’라는 명함이 찍힌 명함을 만들었다.대리님, 팀장님이던 호칭은 ‘사장님 혹은 대표님’이 되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대표님 코스프레에 신이 났던 기억이 벌써 10여년전 일이다.









다시 사업을 하라고 한다면 과연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마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솔직한 답변일 것이지만 나의 DNA는 아마 사업으로 다시금 날 이끌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꺼라 생각했지만 직원이 늘고 규모가 커지는 만큼 고민과 스트레스도 비례하여 늘어났다. 점잖게 말해 ‘비례하여’라는 표현을 썼지만 ‘폭증’했다 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제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컴플레인을 잘 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 의견 개진할 때 최대한 낮고 친절한 말로 상담원을 대한다.

사업이란걸 하고 고객을 대하면서 고객들이 얼마나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폭언과 논리, 심지어 협박을 들으며, 사람이 이렇게 악했던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고객의 쓴소리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거기엔 기업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쟁력 향상이라는 비법이 숨어있다.

까다롭디 까다로운 고객을 만족 시킨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의 귀결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여전히 고객의 소리는 아내의 잔소리만큼이나 따갑다... :)

(이글을 보시는 분들이시라면 조금만 더 따뜻하게 말해주시길)








 첫 제품을 출시 후 7년 만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신제품을 출시한다.



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울고 웃었던 지난 7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온통 안된다는 소리만 하던 이들 의 조언과 비판을 뒤로한체 끝끝내 만들어 내고 나니 그게 잘 되겠냐던 지적은 칭찬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으려 3년간의 실증을 또 거쳤다.


말이 좋아 3년의 실증이지 자금이 소진되는 것과 기회비용 상실을 바라보는 것은 머리카락이 급격히 소진되는 것과 동일한 고통이었다.

10여년전 사업을 시작하며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내 제품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제품을 출시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며 나와 했던 처음 약속.이제 고객과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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